우리는 250년 전부터 배달의 민족이었다
"과거 시험을 본 다음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
고 돼 있습니다. 조선 중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음식점들이 곳곳에 생겼습니다. 당연히 맛집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고객을 더 유치하고자 배달 음식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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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어디가기 귀찮은데 냉면이나 시켜먹자!) |
더 오래 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농업이 발달하면서 생긴 우리나라의 '새참 문화'가 그것인데요. 일하는 장정들을 위해 집에서 손수 만든 음식을 일터로 갖고 간 것이 '음식 배달'의 시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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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막걸리) |
배달 음식은 고위층만 이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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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갱 |
조선시대 때는 '효종갱'을 배달하기 위해서 항아리를 이용했습니다. 갓 끓인 효종갱을 항아리에 넣고, 이를 천으로 둘둘 감싼 다음, 이것을 고객(대부분 사대문 안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신 양반들)에게 배달해 주었습니다. 조선 말의 문신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를 보면, "국 항아리가 그때까지 따듯해서 해장에 더없이 좋다"고 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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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죽지>는 수요미식회 '황교익' 느낌?) |
1906년 일간지 '만세보'에 실린 음식 배달 광고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만세보에 실린 명월관의 음식 배달 광고입니다. 명월관은 음식을 각각 그릇에 담아 상을 차려서 배달을 갔습니다. 지금으로 타지면 한정식 출장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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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에 간 우리네 모습) |
1930년대부터는 각종 탕, 냉면, 국밥, 비빔밥, 그리고 우리 '배달음식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짜장면이 배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배달 가방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철가방의 원조 '목(木)가방'입니다. 그 즈음 신문을 보면, 배달부를 매우 힘든 직업 중 하나이다고 언급한 기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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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힘드네) |
1980년대 들어 각종 아파트 단지가 생기더니, 곳곳에 배달음식점들도 같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는 치킨과 피자 등이 배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목가방도 지금의 철가방으로 바뀌었습니다. 199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 오토바이 배송업이 시작되면서, 지금의 배달부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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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배달부의 모습=철가방 + 오토바이 city plus) -영화 '강철대오' 中 |
그렇게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 됐습니다!
짧티! (짧은 TMI)
# 가장 먼거리를 배달하는 피자 배달부는?
미국 알래스카의 '에어포트 피자'라는 업체는 피자를 비행기로 배달함. 한반도의 거리 만큼 떨어진 곳도 당일배송. 심지어 무료. 피자 가격도 라지 사이즈 한 판의 가격이 32달러. 비행기 기름값보다도 쌈. (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TWhN245HzU)
#'배달부'는 장마철 극한 알바 1위로 선정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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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비올 때 시켜야... 속이 후련했냐!!) |
#우리는 정말 '배달'의 민족이다.
'배달倍達' 은 한민족 또는 고대 한국을 가리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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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배달'의 민족!) |
# 미국 CNN이 운영하는 아시아 정보사이트 'CNN go'는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인 50가지 이유'에서 '배달 서비스'를 세 번째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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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붸달의 민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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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엔 배달시스템을 악용해 '장난 전화'를 한 일이 있었다.
#2009년 한국 디자인문화재단이 1960년 이후 현재까지 우리 한국인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친 코리아 디자인의 하나로 '철가방'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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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네...네가.. 왜 거기서 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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